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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골프장의 15번째 클럽

동심으로 파아란 하늘도 초록 잔디도 푸른 바다도 오늘은 내게 아주 조그맣게 다가온다. 온통 내 마음은 동심으로 가득 차 있다. 2019년 작. 김영화 화백

 

점점 깊어가는 시월 가을골프장으로 간다. 좀 더 두꺼워진 스웨터와 바지의 무게만큼 가을은 한지에 스며드는 묵화처럼 붓끝만 갖다 대도 검붉다. 한 줄기 바람 미세한 현처럼 나뭇잎에 와 닿을 때 힘없이 떨어지는 가을의 가벼움에서 문득 커피를 찾는다. 알싸한 추위와 바람 앞에서 마시는 커피의 향은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이다. 아니 가슴을 타고 내리는 따듯함이다.

그래서일까. 골프장에서 커피는 15번째 클럽으로 통한다. 골퍼에게 커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사실 골프장에서 가장 많이 먹는 식음료 1위가 커피다. 한 골프장에서 하루 150잔, 전국에서 약 10만 잔의 커피가 소비된다. 왜 마실까. 먼저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라운드 때 집중력과 마음의 안정감을 가져다줘서다. 습관처럼 마시는 것 같지만 골퍼는 말하지 않아도 골프와 커피의 궁합을 안다. 여기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자연에서 마시는 커피야말로 가장 맛있는 커피이다.

커피와 사랑에 빠진 바흐는 ‘커피 칸타타’란 작품을 남겼다. 1000번의 키스보다 한 잔의 커피가 더 좋다고 했다. 항상 커피콩 60알을 갈아 같은 맛을 즐긴 베토벤의 커피 사랑은 더할 나위 없다. 지인은 골프장에 갈 때 드립 커피를 가져간다. 골프장에서 핀잔을 받으면서도 뜨거운 물을 빌려 내려 먹는다. 골프장 내에 음식물을 반입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먹던 맛이 아닌 커피는 향기가 아니다”라며 눈치를 보고, 죄송하다면서 자기 커피애에 빠져 있다.

참 그러고 보니 골프장 커피는 너무도 획일적이다. 입력된 머신을 통해 내려주면 끝이다. 그리 좋은 콩을 쓸 수가 없다. 리필을 원하면 또다시 머신 단추 하나를 눌러야 한다. 가격이 안 맞고 맛이 없는 게 당연하다. 아니면 이미 따라놓은 커피를 담아주면 끝이다. 진정한 커피의 맛을 즐길 의무를 골퍼 스스로 리필이라는 환상에 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골퍼에게 커피는 15번째 클럽일 정도로 스코어와 멘털에 도움을 주는데, 잿내 나는 커피를 줘도 되는 것일까.

 


아라 수피아 박사는 “라운드 전 커피 한 잔은 에너지를 올려주고 느낌과 자신감을 향상시킨다”며 “카페인에 있는 테오브로민은 혈관을 넓혀 산소를 증가시키며 테오필린은 기도를 열어 산소 소비를 늘려준다”고 말했다. 수피아 박사를 통해 커피는 우리 기호식품이자 골퍼에게 15번째 클럽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라고 탈무드에 쓰여 있다. 그런데 왜 국내 골프장은 커피에 대해 변화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양질의 커피, 신선한 원두를 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골프장엔 각각의 향기와 감성 커피가 없다.

한 신설 골프장은 고객의 취향대로, 분위기대로, 그리고 가격대로 식당이 아닌 별도의 커피숍을 오픈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리필 없이 영혼을 신선한 향기로 채워주겠다고 덧붙였다. 시대가 변했다.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골프장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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