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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을 온몸으로 기어가는 지렁이

무위자연(無爲自然) 순수자연 그대로를 원한다. 하늘도, 사람도…, 그리고. 2020년 작. 김영화 화백

 

골프를 하는 분들이라면 올해처럼 자연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또 관심 있게 본 적은 드물 것이다. 오죽하면 코로나19 전과 후로 나눠 구분하고 정의하겠는가. 장마철이다 보니 골프장에서 참 많은 자연법칙을 발견한다. 퍼트하기 위해 그린에 올라갔을 때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지렁이를 보고 놀란 것이다. 그린에 지렁이 몇 마리가 온몸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들에겐 바다보다도 넓은 끝없는 무한공간일 것이다.

“살려고 나왔는데 옮겨주자.” “아냐, 이것도 자연의 법칙이야! 그대로 놔두자!” 동반자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다. 둘 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선뜻 어떻게 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 친구는 지렁이를 러프 나무 쪽으로 옮겼고 한 친구는 그냥 놔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찜찜했다. 어떤 것이 옳은 행동인지에 대한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비가 오면 땅에 습기가 차 지렁이는 숨을 쉴 수 없고 그래서 땅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피부로 숨을 쉬는 지렁이는 햇살에 오래 노출되면 죽는다. 자연은 모든 사물과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일정한 법칙이다.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아니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 주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소중한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 지렁이를 옮기는 게 옳을까. 많은 동물 단체가 노루와 새들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해 돌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라운드 뒤 단체 SNS 방에 이 화두를 던졌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코스를 관리하는 지인은 이렇게 답했다. “처음엔 나도 코스를 다니면서 위태로운 생명체들 앞에서 자주 갈등했다. 모든 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행동한다. 벌은 살아남기 위해 독소를 뿜어 침을 쏘지만, 침은 창자와 연결됐기에 곧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지렁이는 살기 위해 온몸으로 기고, 벌은 창자가 빠져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침을 쏜다. 우린 그 절박함을 기억해야 한다”라는 글을 보냈다.

 


그의 글을 읽자 뭔가가 가슴에 쿵 하고 와서 박혔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작은 생명체의 처절한 그 작은 움직임은 몰입이다. 이를 우리 인간의 인문학적 시각으로 가져온다면 무언가에 흠뻑 빠져 심취한 무아지경의 상태일 것이다. 옳은 말이다. 골프를 하다 보면 자신의 목표와 스코어를 향해 몰입하는 동반자를 보게 된다. 반면 온몸으로 저 넓은 그린을 기어서 잘 지나갔는지, 중간에 사체로 남았는지에 더 몰입하는 골퍼도 있다. 이 모두가 골프를 통해 얻는 즐거운 사유다. 골프 안에 자연이 있기에 가능하다. 자연 안에 있는 꽃이며 동물을 보면서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를 고민할 때가 있다. 바로 오늘 그린에서 맞닥뜨린 지렁이가 그렇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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