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실 조용한 그곳으로 마실을 나간다. 뜨거운 대지도, 함께한 동반자들도 잠시 잊은 채 목표한 그곳을 향해 마실을 간다. 2020년 작. 김영화 화백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오늘 비가 온다고 하니 골프 일정을 다음으로 미루자”는 A의 SNS였다.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B에게 연락했다. B는 “무슨 소리냐. 취소를 해도 현장에 가서 해야 한다”며 “우리끼리라도 가서 나머지 2명을 만들자”고 말했다. 단 두 번의 전화 통화, 불과 5분 사이에 팀이 구성됐다.
또 한 번은 햄버거로 간단히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C가 보고 싶은 두 사람을 거론했고, 두 통의 전화로 골프 승낙과 함께 날짜를 잡았다. 모두 “아직 인간성이 살아있다”고 했다.
‘골프는 한 팀을 구성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는 말이 있는데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바꿔 말하면 한 사람이 세 명의 친구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은, 나보다 세 명의 인간 됨됨이와 배려가 더 빛난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골프선수에 대해서는 기억하지만, 그림자가 돼 땀 흘리고 방향을 잡아주는 캐디의 존재감에 대해선 미약하게 여긴다.
1953년 5월 29일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뉴질랜드 출신 에드먼드 힐러리가 정복한 날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했던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는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셰르파를 짐꾼 정도로 생각한다.
셰르파는 네팔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이름이다. 이 소수 민족은 에베레스트 빙하 계곡에서 살아남았기에 산악인을 안내해 정상 정복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노르가이가 없었다면 과연 힐러리의 에베레스트 정복은 가능했을까.
우리는 본질을 보지 못할 때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고 꾸짖는다. 정말 그럴까. 인간은 판단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만약 동물이라면 달을 보지 않고 계속 손만 볼 것이다. 인간은 손가락을 본 뒤에 가리키는 방향의 달을 볼 것이다. 캐디와 셰르파는 달을 가기 위해 지시하는 손가락에 비유할 수 있다. 방향을 알려주고 길을 내면서 이끌기 때문이다. 그 손가락을 탓하는 것은 본질의 속임수다.
훌륭한 사람 옆에는 더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말처럼 나의 뛰어남 뒤에는 반드시 더 뛰어난 친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오늘 골프를 잘 친 것은 나의 뛰어난 능력도 있었겠지만 묵묵하게 도와준 좋은 친구 캐디 덕분일 수 있다. 생텍쥐페리는 “좋은 벗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통된 그 많은 추억과 함께 겪은 그 많은 괴로운 시간, 그 많은 어긋남, 마음의 격동…, 우정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훌륭하다’라는 단어는 누군가와 비교되거나 희생되어서 만들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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