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마음의 파동 내면의 잔잔한 파동은 어느덧 나의 몸 전체에 녹아들고 먼 나라를 여행하듯 방망이를 들고 여행을 떠난다. 2019년 작. 김영화 화백
골프 치기에 가장 적합한 체격과 스피드를 지닌 후배가 있다. 누가 봐도 스포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외견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후배 A는 골프를 그만두려고 한다. 골퍼라면 누구나 다 한 번씩은 ‘때려치울까’ 하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후배는 뜻대로 맞지 않는 공이, 원하는 성적이 나와 주지 않는 골프에 화가 나서 더 이상 치기 싫다고 한다.
일종의 슬럼프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온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박인비 역시 2008년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이후 슬럼프에 빠졌고 심지어는 2010년 일본 무대로까지 옮겨 활동했다. 갑자기 찾아온 심적 부담으로 인해 드라이버 입스가 왔지만 대회를 통해 하나씩 극복했다. 초조와 불안감이 들 때는 골프코스 주변의 아름다운 꽃 색깔과 향기를 감상하며 좀 더 천천히 가려고 했다. 이후 박인비는 슬럼프에서 벗어나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최경주는 자신이 남보다 슬럼프가 적은 것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매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활약한 박찬호는 슬럼프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의 선수인 투수 존 스몰츠는 기나긴 슬럼프를 자신이 가장 잘 던졌을 때의 투구 폼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슬럼프는 실수했을 때, 실패했을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신체와 정신이 통제력을 잃으면서 빠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지나친 성적 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강박관념인 듯하다. 막말로 아마추어 골퍼의 경우 꼭 이겨야만 한다는 승부욕만 버려도 자신의 스윙 80% 이상을 필드에서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슬럼프 대부분은 더 잘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 기인한다.
하지만 슬럼프가 없는 골퍼는 발전할 수 없다. 가장 빠르게 실패하는 것은 가장 빠르게 성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 아들로 태어났고,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안데르센은 외모 콤플렉스와 언어 장애에 시달렸고, 배우의 꿈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좌절됐다. 이후 자신이 경험한 가슴 아팠던 실연을 바탕으로 ‘인어공주’를 탄생시켰다. 가난한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통해 ‘성냥팔이 소녀’라는 동화가 나왔다.
슬럼프는 희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위기가 기회인 것과 같은 이치다. 앤디 그로브는 “역경은 당신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준다”고 정의했다. 맞는 말이다. 실패를, 절망을 선언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는 걸 먼저 생각해보자. 지나친 경쟁과 성적 지상주의를 던져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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