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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이 살던 곳에 지은 골프장

몽골 대지 속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 중 골프가 단연 으뜸이다. 골프란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는 영혼의 랭귀지며, 오케스트라다! 2019년 작.  김영화 화백

 

“이곳이 옛날엔 화전민들이 불을 내서 농사를 지었던 곳이래” “아! 그래, 처음 들어 보는데…”, “이 나무가 살아서 1000년, 죽어서 1000년 산다는 주목나무래. 독일 가문비나무, 자작나무와 함께 발왕산을 지키는 명목(名木)들이래.”

용평리조트를 다녀왔다. 광활한 500만 평에 펼쳐지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숨 쉬는 곳이다. 불과 40여 년 전 화전민이 살던 곳이란다. 동반자들은 책에서만 배웠던 화전민 터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코스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집에 가 용평리조트 주변의 다양한 동식물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고 한다.

기억은 위대하다. 기억은 과거 경험의 심상, 관념, 지식, 신념, 감정 등을 보존한다.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 창작의 모태가 된다. 기억은 추억으로 변환돼 그리움이 된다. 그 그리움으로 인해 다시 그곳에 가고 싶어 한다. 기억과 추억을 머릿속에 저장해 놓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은 감성적 힘을 지니고 있다.

‘천일야화 아라비안나이트’ ‘10일간의 이야기 데카메론’ 모두 스토리텔링이 만들어 낸 명작들이다. 일상적으로 소비해버리는 말이 아닌 공감의 문학적 힘을 가지고 있다. 천일하고도 하룻밤 동안 세헤라자데가 샤리아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그 안에는 끈질긴 힘이 있어야 한다. 데카메론 ‘10일간의 이야기’ 속에도, 하루 10가지 이야기에도 말의 힘만 있어서는 안 된다.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골프장 설계를 누가 하고 코스는 몇 연도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만 했다면 쉬 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있었던 ‘화전민’이 살던 곳이라는 따듯한 공감이 시공간을 초월하게 만든다.

문학동인 한 분이 문자를 보내왔다. 자연과 시간의 결이 깃든 건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재일 한국인 건축가 고 유동룡(이타미 준)의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핀크스 골프장 포도호텔, 방주교회, 아일랜드 골프장 방주교회, 그리고 서원힐스 클럽하우스가 그의 작품이다. 특히 서원힐스 클럽하우스를 설계할 때 이곳 오너의 눈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필자도 이타미 준을 만난 적이 있고 그의 선과 결을 주제로 한 건축에 매료되기도 했었다. 골프장에서 그의 건축 예술물이 많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누구에겐 한편의 예술 영화로 만들어질 때 또 누구에겐 잊혀 가는 골프장 내 건축이었던 것이다. 묻고 싶다. 우린 골프장에 가서 골프를 치고 돌아오면 무엇을 기억하는지. 또 무엇이 생각나는지. 기억한다는 것, 생각난다는 것, 추억한다는 것, 그리고 그리워한다는 것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까.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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