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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 찡한...아픈 아내와 마지막 라운드



시를 쓰는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선배는 밑도 끝도 없이 매미 소리가 좋으니 골프를 치러 가자고 했습니다.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강원 용평골프장을 잡아 1주일 후 라운드하러 떠났습니다.


선배는 자기 아내를 공주 모시듯이 아주 극진하게 대했습니다. 라운드 내내 닭살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선배 형수는 선배의 극진함에도 별반 표정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 이상한 라운드였습니다. 약간은 짜증이 밀려왔고 선배가 야속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려면 차라리 둘이서 오든가, 아님 내게 아내를 데려오라고 하지.
하지만 라운드가 끝나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아우님 정말 고마워.
어쩌면 우리 부부가 함께 하는 마지막 라운드가 될지 몰라.
사실은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를 받아야 돼. 그런데 며칠 전부터 밤에 우는 매미 소리가 너무 아름답다는 거야.
골프하면서 자연의 소릴 듣고 싶다는 말에 예약을 부탁했고 함께 해주길 부탁한 거야.
아우님 고마워. 소원 들어줘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코끝이 찡하고 눈 안에 물기가 고여 실내 풍경이 뿌옇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종현씨! 정말 고마워요. 건강할 때 꼭 한번 이렇게 싱그러운 바람, 햇살, 풀벌레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소원 풀었어요.”

선배 형수가 핏기 없는 표정으로 따듯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짠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왜 라운드 내내 선배의 극진함에도 무표정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골프 치며 언제 한번 자연의 고마움을 생각한 적 있었나.
아니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스윙만 봤고, 몇 타를 쳤는지, 돈을 땄는지, 그저 남 탓하기에 바쁘지 않았던가.”



난 선배 형수에게 빨간색 촛불을 살라 꼭 쾌유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선배 형수의 시련은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에겐 시련도 없는 것이기에.


그림=김영화 화백
글=이종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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