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는 세월 짙푸른 골프장이 엊그제 같더니 어느새 푸른 빛은 검게 변하고 희끗희끗한 모양새가 됐다. 나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9년 작. 김영화 화백
며칠 전 일본에서 활동하다 은퇴하고 교습가로 방향을 튼 허석호 프로의 골프아카데미 오픈 행사에 다녀왔다. 최경주와 양용은은 아직도 현역에서 뛰고 있지만, 허석호는 뜻한 바 있어 좀 더 빠른 결정을 내리곤 후진 양성을 위한 교습가로 변신했다. 이후 최혜진, 김아림, 김지영 등의 후학을 길러내며 ‘한국의 데이비드 레드베터’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 허석호는 미국의 유명한 골프잡지에 한국 교습가 1위에도 올랐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10승 이상을 거뒀고 2003년 브리티시오픈에서는 한국인 최고 성적(11위)을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허석호에게 탄탄대로의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무릎 부상도 심했고, 집안 형편 탓에 투어프로를 포기하려 했었다. 그때 필자는 “여태껏 잘해왔는데 조금만 더 버티자. 오히려 그 방법이 더 빠르다”고 설득한 적이 있다. 만약 그때 그가 투어프로를 포기했다면 우린 유능한 골프선수와 교습가를 잃을 뻔했다.
패스 브레이킹(Path Breaking)이란 말이 있다. 사람들이 지나다녀 생긴 작은 길과 깨트리기의 합성어로 기존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내는 개척자를 뜻한다. 누구나 원하는 길과 넓은 길로 가면 빨리 가거나 뜻은 이루겠지만 새로운 발자취는 남기지 못할 것이다.
또 얼마 전 골프라는 공통점을 앞세워 SNS에서 매년 해오던 ‘쌀 한 포대의 기적’을 올해는 중단하겠다고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낸 바 있다. 그런데 멀리 태국 방콕에서 골프리조트를 운영하는 A 대표가 어려울 때일수록 더 추진해야 한다며 혼을 냈다. 또 다른 많은 분까지 합세해 결국 29년째 봉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주변의 많은 분이 패스 브레이킹을 알게 해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셰르파’는 단순한 짐꾼이 아니다.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할 수 있게 큰길을 내준 네팔 고산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의 이름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세계적인 유명 등반가들도 없었을 것이다. 골퍼에게 역경이란 오히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화내고 포기하려는 경우가 참 많다. 패스 브레이킹 정신이 부족한 것이다.
만약 허석호가 그 순간 포기를 했다면, A 대표의 독려가 없었다면 새로운 것과 발자취는 없었을 것이다. 앤디 그로브는 “역경은 당신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준다”고 했다. 다가올 새해에는 어렵고 힘들 때마다 패스 브레이킹이란 단어를 한 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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